최초로 승자독식체제를 받아들인 어이없는 20대

20대가 사라졌다 ozzyz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합니다.

오늘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해주신 일화가 있었다

자신이 대학생이던 74년 시절.

국문학도였던 그에게 이상하게 필수과목에 생물이 들어있었다곤 하시고.

그 교수님은 말하지면 일명 '깐깐한 무서운 교수님' 이셨다고 한다.

매주 퀴즈를 보면서도 수업내용은 대부분 독어로 진행하시는 교수님.

중요한(사실은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수업을 진행하기로 한 어느 날

(당연히 그 주에도 퀴즈를 보기로 되어있었다.)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 40~50명이 단체로 작당을 하고는 그날 수업을 빠지고

일명 '철렵'을 나간건데.

그 덕분에 그 학기의 대부분의 학생이 'F'를 맞거나 그 외에는 모두 '시''들''시''들'했단다

이 이야기가 왜 나왔는가 하면

오늘부터 학생들의 조별 발표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오늘 발표하기로 되어있던 네 개의 조가 모두 발표 준비를 해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온 일화였는데..

이 일화를 이야기해주시면서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던가 하면

그 때의 우리는 그래선 안돼는 것이긴하지만

수업준비를 안하면 그냥 수업을 빠질 정도의 저항의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어떤가

출석부를 보면 하얀 학생들이 많다. 결석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공부할 준비가 되어있던 아니던 그냥 수업시간에 참석해서 그냥마냥 있는 것이다.

단지 참석해서 얼굴도장만 찍고가는 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씀이다.

공무원 및 임용시험의 경쟁률이 하늘로 치솟을 때 마다

20대의 한숨은 땅 꺼지게 만든다.

그런데도 자학할 줄만 알고, 아니 그 조차도 못하고 멍청하게 흐르기만 하는 지성인이라는 20대 대학생들.

내가 보기엔 제도적으로 그 시작을 보장받고자 하는 의욕도 없다.

보장 된다고 하여도 제대로 써먹기나 할런지.

도대체 열정적 저항과 도전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어릴 때부터 제공받아온 오락거리에 너무 길들여져 버린 것은 아닌지.

<88만원 세대>

 "최초로 승자독식체제를 받아들인 세대"

올해 28세. 서른 즈음에 다가서는 기생족인 나에게도

칼로 매질을 해주는 말이다.

berserk

by Bohemian | 2007/10/26 10:27 | Just imagin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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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Vinci at 2007/10/26 15:52
다르게 말하면, 수업준비를 안했지만 그 현실에 직면에서 교수님께 사죄하고자 하는 용기가 있었던 것일수도 있죠. 비겁하게 수업에 안들어오고 도망가는것이 아니라.

추억은 아름답게 변하고, 낭만은 현실을 가리죠. 과제 준비를 안한것도, 수업을 빠진것도 잘했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교수님은 모든걸 낭만으로 희석해서 추억속에만 계시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Bohemian at 2007/10/26 17:16
Vince님/ 우선 잠시 제 글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봅니다. 그러고보니 vinci님의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군요. 저의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는데요. 아무래도 비언어적 요소가 제거 된 언어의 전달이란 이런 부분에서 약점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저의 글 실력이 매우 부족함을 느끼고요. 위에서 교수님의 이야기부분은 제가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고 또 핵심단어로 보이는 '저항의 낭만'은 제가 만들어낸 단어였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ozzyz님의 포스팅을 읽고난 측면의 시각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해석한 것이었는데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것은 저의 잘못이겠지요. 좀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교수님께 사죄하고자 하는 용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과제를 준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과거의 20대는 부당한 상황에 대해 저항하면서 같이 행동하고 그 결과(성적이겠죠)를 책임질 수 있었으나, 지금 과제를 안해 온 학생들은 그런 저항도 아니면서 그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강의실에서의 분위기와 지금 학교의 상황(축제, 졸업여행들의 행사가 있는)에 대한 요소들이 빠져있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개인적 경험을 다른 포스팅을 통해 해석하려했다 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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